일본에서 개발된 새끼 물개 모양의 ‘파로’. 쓰다듬어주면 기분 좋은 표정을 짓고 뒤척이며 소리를 낸다. EPA 연합뉴스
사람보다 뛰어난 로봇에 대한 상상은 기원전부터 여러가지 형태로 반복됐다. 그런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나 대신 어려운 일을 해줄 테니 만들자거나, 내 자리를 빼앗을 것이니 걱정스럽다는 담론도 어느덧 클리셰가 되었다. 그런데 사람보다 못하고, 사람을 대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서 사람이 옆에서 돌봐줘야 하기 때문에 성공한 사례들이 꾸준히 등장한다. 전조는 다마고치였다.
다마고치는 대중적 인기를 끈 첫 ‘인공 생명’이었다. 조그만 달걀 모양 게임기의 액정 화면 속에 나타난 알이 부화하면 사용자는 버튼을 조작해 먹이를 주고 똥을 치우고 예방접종을 맞히는 등 다마고치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돌봐야 한다. 각 성장 단계마다 돌보는 방식을 달리해야 잘 자랐고 사용자가 어떻게 돌봤느냐에 따라 성체의 성격이 달라졌다.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 병든 채로 성장하거나 심지어 죽기도 했다.
1996년 11월23일 일본에서 출시된 다마고치는 1997년 5월 영미권과 한국·중국 등에도 상륙했다. 그해 상반기까지 1천만대가 팔렸고, 붐이 사그라진 1998년 중반까지 4천만대가 판매됐다. 2021년 기준 전세계 누적 판매량이 8300만대를 넘었다.
사용자의 행동에 반응하는 장난감은 의외로 오래됐다. 19세기 초부터 “마마” “파파”라 말하는 아기 인형이 등장했다. 1850년대 한 영국 제작자의 인터뷰를 보면, 가격이 숙련공의 한달 수입 정도인 말하는 아기 인형을 1년에 12개 이상 팔았다고 한다. 다마고치는 능동적으로 보챈다는 점이 달랐다. 배가 고프면 ‘삐삐’거리는 전자음을 내며 떼를 썼다. 다마고치는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여러가지 사건 사고와 사회현상을 일으켰고, 개발을 주도한 요코이 아키히로와 마이타 아키는 “수백만 인시(人時)의 노동력을 가상 애완동물 사육에 써버리게 만든 공로”를 인정받아 1997년 이그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또 다마고치 같은 ‘인공 생명’, 나아가 기계나 로봇, 소프트웨어 등에 정서적 애착을 갖게 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다마고치 효과’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그렇다면 다마고치는 인공지능인가? 인공지능 개념을 처음 논의한 다트머스 워크숍(1956년)부터 지금까지도 무엇이 인공지능인지는 불변의 기준이 없다. 시대와 유행과 분야에 따라 계속 달라진다. 얼마나 신기한지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다마고치는 누적된 경험에 따라 성격이 변하고, 같은 자극일지라도 성격과 상태에 따라 달리 반응하며, 사용자에게 능동적으로 요청한다. 이런 특징을 갖춘 기계나 소프트웨어는 1960년대 기준으로는 획기적인 성공 사례이고, 1990년대 말 기준으로는 나쁘지 않은 응용 사례였겠지만, 액정 게임기가 흔해진 1990년대 말 완구 산업에서는 그저 성공한 게임기였다.
2018년 1월 일본 도쿄의 소니 쇼룸에서 선보인 로봇개 아이보. AP 연합뉴스
사람보다 뛰어난 인공지능을 추구하지 않은 덕분에 성공한 사례는 소니의 로봇개 ‘아이보’로 이어졌다. 1995년 이데이 노부유키가 소니의 새 사장으로 취임해 혁신을 강조하자 연구자회사인 소니컴퓨터과학연구소의 사장 도이 도시타다는 인공지능 로봇 개발로 부응하고자 했다. 도이는 디지털 저장매체 엔지니어 출신 경영자로서 컴퓨터과학연구소에 부임해서야 인공지능과 로봇을 어깨너머로 접한 참이었다. 후지타 마사히로 등 소니의 개발자들은 음성·화상 인식 같은 인공지능 기술은 중요한 애플리케이션에 적용하기에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지만 “적절하게 설계된 엔터테인먼트 로봇”, 즉 유용한 일을 하지 않는 로봇에 탑재한다면 흥미를 끌 만한 매력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누벨 에이아이(AI)의 철학을 수용해 로봇의 행동이 충분히 복잡하거나 예상치 못하도록 다듬는다는 목표도 세웠다. 그래야 기존의 움직이는 인형들과 차별성을 지닐 수 있고 사람들이 계속 관심을 보이리라는 판단이었다. 도이는 이런 비전에 적극 동의하고 게임기 회사인 남코로 이직했던 옛 부하 오쓰키 다다시를 불러들여 제품 개발을 총괄하도록 했다.
그러나 소니 본사는 아이보의 출현을 못마땅해했다. 장난감 로봇은 소니의 이미지와 체면을 손상시킨다는 게 본사 경영진의 생각이었다. 사장에서 회장으로 등극한 이데이도 ‘로봇은 자동인형에 불과하니 19세기에나 어울리는 제품’이라며 거부감을 보였다. 도이는 연구자회사 사장직을 걸고서야 판매 허가를 받아낼 수 있었다.
아이보는 1999년 6월1일, 관절을 움직이는 모터 18개, 10개의 각종 센서, 카메라와 스테레오 마이크, 그리고 50M㎐로 작동하는 중앙처리장치(CPU)와 16MB 램을 갖춘 첫 상용 모델로 출시됐다. 일본에 25만엔 가격으로 3천대, 미국에 2500달러 가격으로 2천대를 풀었는데, 비싼 가격에도 각각 20분과 4일 만에 완판됐다. 화려하게 데뷔하면서 후속 모델 개발과 판매가 지속됐지만 소니 경영진의 여론은 반전되지 않았다. 비싼 개발 유지 비용 탓에 적자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2004년 퇴임을 앞둔 이데이가 후임자에게 짐을 떠넘기지 않겠다는 각오로 누적 판매량 15만대를 달성한 로봇사업부를 폐쇄했다.
아이보가 노린 주력 소비자층은 얼리어답터였다. 그래서 사용자가 직접 프로그램을 짜서 업로드할 수 있는 기능을 갖췄고 기술문서도 부분적으로 공개했다. 덕분에 카네기멜런대학에서는 아이보를 로봇공학 교보재로 활용했고, 로봇용 인공지능 실험·연구 기자재로도 많이 팔렸다. 당시 사용자 게시판에는 연구를 명목으로 아이보를 들여와서 같이 놀고 있다는 자랑도 자주 올라왔다. 가전제품이라면 불량으로 판정될 에러와 버그들이 개성이자 인격적 특성으로 풀이되기도 했다. 첫 발매 뒤 3~4년이 지나면서 아이보가 소일거리와 재미를 주는 반려로봇이라는 언급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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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개발돼 노인들의 일상을 챙기고 말벗이 돼주는 반려인형 ‘효돌’. 애교를 부리고 약 먹을 시간 등을 알려준다. 한겨레 자료사진
2004년 일본산업기술총합연구소가 지능시스템주식회사를 분사시켜 상용화한 치료로봇 파로는 처음부터 사람에게 돌봄받을 목적으로 개발된 인공지능 로봇이다. 외형은 사람 갓난아기 정도 크기의 하얀 새끼 물개 봉제인형이다. 1993년부터 개발을 시작해서 1998년 첫 시제품을 공개하고 2004년 여덟번째 개량 버전이 상용화되었는데, 로봇으로는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의 의료기기 인증을 받았다. 발매 당시 미국 공급 가격은 6천달러, 현재 일본 내 판매 가격은 3년 보증 조건으로 48만엔(약 420만원)이다. 파로가 하는 일은 쓰다듬어주면 기분 좋은 표정을 짓고, 뒤척이며 소리 내고 돌아다니는 것이다. 중앙처리장치 2개가 불과 7개의 모터를 제어해서 마치 진짜 어린 반려동물을 돌보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연구 결과를 보면, 파로를 개인용으로 지급받은 입원 환자와 파로가 상주한 요양원 입소자가 느끼는 만족도가 크고, 요양보호 종사자들의 업무강도 개선에도 효과가 크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봉제로봇 효돌은 현재까지 가장 ‘가성비’ 높은 성공 사례다. 7살 꼬마 아이를 모티브로 제작됐는데,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토닥이고 손을 조물조물하면 애교를 부리는 일이 핵심 기능이다. 여기에 약 먹을 시간을 알려주고 음악을 트는 기능 등이 부가되어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홀몸노인에게 지원하는 경우가 많지만 지원 없이도 3년 보증에 88만원으로 저렴한 가격이다. 가장 큰 효과는 사회복지사가 진행하는 기존 돌봄 프로그램과 연계됐을 때 나타난다. 효돌이 함께하면서 혼자 계신 어르신들은 덜 외로워하시고, 어쩔 수 없이 띄엄띄엄 방문하는 사회복지사분도 덜 불안해한다. 돌봄을 받는 사람과 돌봄노동을 하는 사람 모두를 돕는 아름다운 기술이 보인다. 얼마나 똑똑하냐 못지않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도 인공지능은 이렇게나 달라진다.
과학저술가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과학사 및 과학철학협동과정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가톨릭대학교 교양교육원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동국대학교 다르마칼리지에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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